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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포에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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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니 전쟁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요? 바로 한니발 장군입니다. 알프스 산을 넘으며 그 용맹을 떨치던 한니발 장군이 없는 포에니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한니발의 등장과 승승장구로 2차 포에니 전쟁은 시작 되고 또한 한니발의 패배로 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1. 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이 등장하는 2차 포에니 전쟁은 BC 218년 ~ BC 201년까지 16년 간 진행된 다른 말로 '한니발 전쟁' 이라고 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일어납니다. 1차는 카르타고 근교에서 일어난 해상 전투였다면 2차는 대륙에서 일어난 대륙 전쟁이었으므로 로마에게 아주 유리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로마 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탈리아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한니발의 군대는 카르타고인 에스파냐인 그리고 골 족인 용병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당대 최강인 누미디아의 기병대도 있었고 한니발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이끌었던 코끼리 부대도 있었습니다. 한니발 부대가 알프스를 넘어 왔을 때는 6만이었던 군인들이 2만 6천명으로 줄었고 코끼리는 한 마리만 살아남아 이탈리아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2. 칸나에 전투 - 초승달 전법 BC 216년 한니발을 포에니 전쟁의 영웅으로 불리게 만든 칸나에 전투가 이탈리아 남부에서 일어납니다. 9만이나 되는 로마 군이 5만 밖에 안되는 카르타고 군에게 포위되어 무차별 하게 학살 당한 전투입니다. 한니발이 이 칸나에 전투에서 사용한 전술이 그 유명한 초승달 전술 입니다. 초승달 전법은 로마 군인들이 밀고 들어올 때 한니발의 군인들은 가운데가 불룩 나오게 하는 초승달 대형을 만듭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가운데로 밀고 들어올 때 일부러 중앙의 불룩 나온 대형은 뒤로 밀리도록 하고 양 날개에 있는 군인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앙의 군인들이 문을 열어주듯 뒤로 물러나면서 로마 군인들이 안으...

1차 포에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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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는 BC 732년 경 로무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에 의해 세워져 약 500년 가까이 귀족과 평민 사이의 계급 투쟁을 겪으며 그들 스스로 법 기반 위에 기틀을 다져가고 있었습니다. BC 264년 로마는 굉장히 풍요롭고 해군력이 막강하여 북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무대로 700년 가까이 영화를 누려온 대표적인 국가 카르타고와 시칠리아 섬을 놓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포에니 전쟁'입니다. 1. 포에니 전쟁의 발단 포에니 전쟁은 BC 264년에서 BC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세 차례의 전쟁을 말합니다. '포에니 란 말은 라틴어로 '페니키아인' 이라는 뜻이 랍니다. 이것은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였으므로 로마인들이 카르타고를 그렇게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초창기 로마는 해상 국가 카르타고와는 전혀 충돌이 없었습니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대륙 국가였고 카르타고는 바다에서 배를 이용하여 무역을 하는 해상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바로 아래에 붙어있는 카르타고의 영토였던 시칠리아 섬의 작은 나라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레스 왕 시절 그를 섬기던 이탈리아인 용병 마메르티니가 아가토클레스 왕이 죽은 후 그리스의 식민지인 같은 시칠리아 섬에 있는 메시나 시를 점령한 것이 발단이 됩니다.  마메르티니 용병들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메시나 시에 가까이 가서 그들이 잠시만 머물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메시나 시민들은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휴식 할 수 있는 거처도 주고 식량도 풍성히 제공해 줍니다. 근거지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용병들은 친절한 메시나 시민들에 의해 평안해지자 다른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들은 깊은 밤에 평화로운 메시나 시민들을 기습 공격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여버리고 여자들은 포로로 잡아 자신들의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용병들은 메시나 시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 도시들을 약탈하며 해적질까지 하게 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