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황제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는 최초로 로마를 통일한 인물이지만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는 않았어요. 그는 황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카이사르(가이사)라는 이름은 곧 황제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카이사르의 모든 재산은 그의 양 아들 옥타비아누스에게 가게 되는데 그 중 일부는 로마 시민들에게 일정 금액이 상속됩니다. 이렇게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까지 상속을 받게 되니 로마 시민들이 카이사르를 잊을 수 있을까요? 원로원들은 로마를 구하려고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했지만 상속자로 사랑받은 로마 시민들은 그를 죽인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양 아들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세우게 됩니다. * 2차 삼두정치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군 사령관이었던 안토니우스와 원로운 의원인 레피두스를 끌어들여 2차 삼두 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레피두스는 바로 실각하고 이탈리아 스페인 갈리아등 서방은 옥타비아누스 발칸반도 소 아시아 시리아 이집트등 동방은 안토니우스가 관할하며 양자 대결로 가게 됩니다. 1)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 원정 길에 오르면서 소 아시아의 다소(타르소스)성에 머물게 되는데 그 다소의 백성들이 안토니우스에게 많은 후원과 도움을 주게 되고 안토니우스는 그 보답으로 로마 시민권을 다소의 시민들에게 주게 됩니다. 추측 하건 데 사도 바울의 가문도 이 때 시민권을 받지 않았을까요. BC 41년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집정관의 지위로 클레오파트라를 다소에 부릅니다. 이유는 카이사르의 암살을 도왔다는 죄목을 추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오는 클레오파트라는 죄인이 아닌 이집트의 여왕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다소 성에 입성합니다. 28살의 클레오파트라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으로 42살의 안토니우스를 사로 잡습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지요. 당시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인 옥타비아를 아내로 두었던 안토니우스는 아내를 버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거처 하면서 클레오파트라와 다시 결혼을 하게 되며 3명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