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몬 왕조와 헤롯가문
마카비 혁명으로 세워진 하스몬 왕조는 예루살렘 동남쪽의 에돔 지역까지 정복하며 융성해집니다. 그런 하스몬 왕조에게 조공을 바치던 에돔의 헤롯 가문이 세계의 흐름이 로마에 있음을 파악하여 하스몬 왕조를 배반하고 로마에 붙습니다. 결국 에돔 총독 안티파터(헤롯이 아버지)는 로마의 폼페이우스를 도와 예루살렘을 정복하는데 일조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때부터 로마와 헤롯 가문의 이중 지배 구조를 겪게 됩니다. 1. 유대의 왕이 된 헤롯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에는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유대인이 1만 2천 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하스몬 왕조의 두 아들 싸움에 중재 역할을 한다는 명목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옵니다. 그중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 가족들을 모두 포로로 로마로 데려가고 힐카우스 2세를 남겨 자기네 맘대로 대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유대가 정복한 에돔, 사마리아, 갈릴리, 데카폴리스등을 모두 독립 시켜 원주민들에게 돌려 줍니다. 이시기에 에돔인 헤롯이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와 안토니우스를 찾아가 정치적 술수와 아첨을 통해 유대를 다스리는 '왕'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는 힐카우스가 다스리던 갈릴리 이두매 사마리아까지 다스리는 권한을 얻어 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헤롯을 싫어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어 여러 부인이 있음에도 하스몬 왕가의 공주인 마리암네와 또 결혼합니다. 대헤롯과 마리암네 이야기는 요세푸스 유대고대사에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명의 부인이 있었던 헤롯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유대 공주였던 마리암네였다고 합니다. 헤롯이 이 여인을 너무 도 사랑해 그가 로마로 옥타비아누스를 만나러 갈 때는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하고 가는 길이었으므로 혹시 자신이 로마에서 무슨 변을 당하거든 마리암네를 바로 죽이라고 시종에게 명령을 내려놓고 갔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가장 사랑한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